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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기도의 특권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와 계시(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섭리와 성신의 감화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넉넉지 않으니,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그의 앞에 토로(吐露)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실제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그를 사모하기도 하고 그의 업적(業績)과 그의 자비와 그의 축복에 대하여 묵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우리의 실생활에 대하여 그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놓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함이 아니요,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는 저희의 매일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고 저희의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겨 버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제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하신 그의 보증은 또한 우리에게 대한 보증도 된다.예수 자신도 사람들 사이에 거하실 때에 자주 기도하셨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한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신 사실은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이 궁핍하고 연약하였던 것을 증거한다. 그는 범사에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한 형제로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히 4:15)는 자니
그의 품성이 악을 물리치셨다. 그는 죄악 세상에서 심령의 투쟁과 고민을 당하였다. 그의 인성(人性)은 그에게 기도가 필요하게 하고 기도가 특권이 되게 하였다. 그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서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은즉 하물며 연약하고 죄가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은 더욱 열심히 항상 기도할 필요를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의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부시려고 기다리신다.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가 기도를 그렇듯 적게 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중에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진정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시려고 고대하시고 기뻐하시지만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기를 매우 싫어한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그리워 하시고 저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려고 하시지만 그들이 그렇듯 기도를 적게 하고, 그렇듯 믿음이 적으니 이것을 볼 때에 하늘의 천사들이 시험에 빠지기 쉬운 불상하고 무능력한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기를 좋아하며 그에게 가까이 있기를 좋아한다. 저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을 저희의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 세상의 자녀들은 성신의 빛과 그와 교제함이 없이 행하기를 만족히 여기는 듯하다.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청하실 때에 그 주신 바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자의 무한한 자원(資源-富, 力, 지智 等의)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는 자의 수중에 있는 열쇠이건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찌하여 기도하기를 싫어하는지? 끊임없는 기도와 늘 깨어있음이 없이는 우리는 부주의하게 되고 정도에서 탈선할 위험성이 있게 된다. 대적 마귀는 우리가 열성 있는 간구와 믿음으로 시험을 이길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대하려면 우리에게는 몇가지 조건들이 있다. 이 조건들 중 첫째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그는 허락하시기를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사 44:3)게 하리라고 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며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은 확실히 배부르게 될 것이다. 성신의 감화를 받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할지니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크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 자체가 한 논제(論題)가 되나니,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이유를 웅변으로 변호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우리를 위하여 하여 주시도록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죄를 품든지, 알고 지은 죄를 버리지 아니할 것 같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나 회오하고 통회하는 자의 기도는 언제든지 받으실 것이다. 모든 아는 죄를 바로잡은 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의 공로이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그의 보혈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주께서 받으시는 조건을 응하기 위하여 할 일이 있다.
응답받은 기도의 또 하나의 요소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믿는가?
허락은 광범하고 무한하며 허락하신 이는 미쁘시다. 우리가 구하는 꼭 그것을 우리가 구하는 바로 그 때에 받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잘못함이 많고 앞에 것을 잘 보지 못함으로 어떤 때에는 우리에게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을 구한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우리가 영적으로 밝아진 눈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 자신도 원하게 될 것-을 주심으로 우리 기도를 응답하여 주신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한 때라도 우리는 그 허락을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니 대개 응답의 시기가 확실히 오게 되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꼭 그 방식으로 응답되고 또한 우리가 원하는 꼭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므로 잘못하실 리가 없는 것이요, 지극히 선하심으로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런즉 비록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그를 의지하기를 의심하지 말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그의 확실한 허락을 믿으라.우리가 믿음을 가지기 전에 우리의 의심과 두려움에 붙잡혀 우리가 밝히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의혹이 더욱 커지고 깊어지게 될 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무력한 그대로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겸비하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무한하신 지식을 가지신,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자기의 뜻과 말씀으로써 통치하시는 자에게 우리의 소원을 고하면 그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 말미암아 무한하신 자의 마음과 연락된다. 비록 기도하는 그 당시에는 우리 구주의 얼굴이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시고 계시는 현저한 증거는 볼 수 없을지라도 그가 그렇게 보시는 것은 사실이다. 비록 우리는 그가 우리를 만지시는 것을 감각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손은 사랑과 긍휼로서 우리를 안찰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과 축복을 구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를 하면서 어찌 용서성이 없는 정신을 품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랄진대 우리는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자 하는 그와 같은 모양으로 그와 같은 정도로 남을 용서하여야 할 것이다. 기도를 꾸준히 하는 일은 응답을 받는 한 조건이 된다. 우리의 믿음과 경험이 자라나기를 원할진대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항상 하며”,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롬 12:12; 골 4:2)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고 권하였다. 바울은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가르쳤다. 유다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유 20, 21)라 하였다.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리하여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와서 우리의 생명으로 들어오고 다시 순결과 거룩함이 우리의 생명에서 하나님께로 흘러 돌아가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아무 일로든지 그대는 방해를 받지 말라. 예수와 그대들의 심령 사이에는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라. 기도를 습관적으로 늘 하는 곳으로 가서 하도록 기회를 찾으라.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들은 기도회에 참석하게 될 것이요, 또 저희의 의무를 신실히 행하며 저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얻으려고 열심히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저희가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온갖 기회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기도할 것이요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여서는 안될 것이니 대개 그것이 심령의 생명인 까닭이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 놓을 것이다. 은밀한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만이 들으셔야 한다. 호기심을 가진 자의 귀는 이러한 기도의 호소를 들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은밀한 기도에 있어서는 심령은 주위의 영향과 소란으로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 심령은 조용히 그리고도 열렬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찾게 될 것이다. 은밀한 것을 보시고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자에게서 나오는 그 감화는 쾌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침착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며 또 사단과의 투쟁에 있어서 자신의 심령을 강하게 하고 붙들어 나아가기 위하여 신령한 빛을 수집(收集)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의 성채(城砦)시다. 그대들은 골방에서 기도할 것이요 그대들이 매일이 업무를 행할 때에도 그대들의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도 이렇게 함으로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는 묵상 기도는 좋은 향내와 같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 심지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자는 사단도 능히 정복할 수 없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다. 아무 것도 우리의 마음을 열성 있는 기도의 정신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거리의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중에서라도 우리는 옛날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 앞에 자기의 소원을 아뢴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지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마음문을 열어놓고 예수께서 하늘의 손님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를 청하는 초청을 보내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써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不純)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막을 수 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과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문을 열어 놓는 자들은 이 땅의 분위기보다 더 거룩한 분위기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늘과 간단없는 교통을 지속(持續)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에 대한 더욱 명확한 견해(見解)와 영원한 실재(實在)에 대한 더욱 충분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결함의 미(美)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채워야 할 것인바 이것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하늘 사물의 계시를 받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 공기를 호흡하기를 허락하시도록 우리의 심령을 항상 하늘로 향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매우 가까이 살므로써 뜻하지 않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생각이 마치 화초가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들은 그를 괴롭게 하거나 피곤케 할 수 없다. 그대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그는 당신의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시지 않으신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 5:11). 그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민망히 여기신다. 우리의 마음을 번뇌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에게 내어 놓으라. 그가 감당하시기에 너무 과대(過大)한 것은 없나니 대개 그는 세계들을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사건을 관리하시는 이심이다. 다소라도 우리의 평강에 관계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가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우리의 경험 중에 어떠한 사건이 너무나 흉악하다고 하여 그것을 보시지 않으시는 것이 없고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가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당신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진정한 기도라도 우리의 천부께서 그것들을 못본체 하시거나 거기에 직접으로 관심을 두시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는 그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는 주시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명료하고도 완전하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6:26, 27, 15:16)고 하셨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만 기도의 시작과 끝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허락하신 바를 믿고 그의 은혜를 의지하고 그의 사업을 행하면서 예수의 마음과 정신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에 아무라도 예배적 행사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기 위하여 은둔자(隱遁者)나 승려(僧侶)가 되어 세상을 피하기를 원치 아니하신다.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산과 무리들 사이에 계신 생애-와 같아야 할 것이다. 기도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자는 오래지 아니하여 기도를 그치게 되든지 또는 그의 기도가 일종의 형식적 일과(日課)가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사회 생활에서 떠나서 그리스도의 의무와 십자가를 지는 일의 범위를 벗어날 때에 또는 사람이 저희를 위하여 열성으로 일하신 구주를 위하여 열심으로 일하기를 그치는 때에 그 사람은 기도의 제목(題目)을 잃어버리게 되고 기도할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기도는 개인적이요 이기적이 된다. 그들은 인류의 궁핍에 대하여서나 또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기 위한 힘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 있어서 피차에 힘을 주고 격려를 주는 교제의 특권을 등한히 하는 때에 우리는 손실을 입는다.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그 생생한 맛과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그 진리의 성결케 하는 감화로 말미암아 깨우치거나 각성하기를 그치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쇠약하여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귀는 가운데 피차 동정하는 일이 부족함으로 큰 손해를 본다. 고독(孤獨)주의로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직책을 감당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 가운데 있는 사교적 소질을 적당히 배양하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남을 동정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에 우리를 계발시키고 강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교제하면서 피차에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에 관한 귀한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저희의 마음도 시원케 되고 다른 사람도 시원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천부에 대하여 더 배우며 그의 은혜에 대하여 새로운 체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는 그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지며 격려함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에 대하여 더욱 생각하고 자신에 대하여 적게 생각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시는 증거를 볼 때마다 그를 생각할 것 같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에 그를 생각하게 될 것이요, 또한 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를 찬송하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세(現世)의 사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기에 흥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친구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함이니 우리의 기쁨이나 슬픔을 그와 더불어 함께 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무한히 큰 이유가 있나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생각 가운데서 하나님을 첫째로 삼고 그의 선하심과 그의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가장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풍성한 선물을 주신 것은 우리가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애착심을 두어서 하나님께 드리기를 아끼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들로 하여금 항상 그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의 하늘에 계신 은혜 주시는 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줄로 우리를 그와 묶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낮은 땅에 너무도 가까이 살고 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위에 있는 성소의 열린 문을 쳐다보자. 거기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히 7:25)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친다.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시 107:8) 그를 더욱 찬송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전연 구하는 것과 받는 것으로만 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만을 항상 생각하고 우리가 받는 복에 대하여는 도무지 생각지 아니하는 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기도도 별로 많이 하지 아니하고 감사하기를 너무 적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항상 받는 자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기를 적게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에 대하여 얼마나 그를 적게 찬송하는지!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 12:7)고 하셨다. 무릇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일은 즐거움과 찬송의 노래와 감사함으로 해야 할 것이요, 슬픔과 우울함으로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온유하시고 자비하신 아버지시다. 그를 섬기는 일을 마음을 슬프게 하거나 괴롭게 하는 일로 생각지 말 것이다. 주를 경배하고 그의 사업에 참예하는 것은 즐거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자녀를 위하여 그처럼 큰 구원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이 당신을 각박하고 까다로운 주인처럼 여기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그는 저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시니 저들이 그에게 예배할 때에 저들과 함께 계셔서 저들에게 축복하고 위로하시므로 저들의 마음을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을 섬기는 가운데서 위안을 얻으며 그의 사업에서 고난보다도 즐거움을 찾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는 당신께 예배하러 오는 자들이 당신이 돌보시고 사랑하여 주심에 대한 귀한 감상을 얻게 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날마다 하는 모든 일에 용기를 얻으며 범사에 정직하고 충실하게 할 은혜를 가지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십자가에 둘러 모일 것이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는 우리의 명상(瞑想)과 담화의 제목이 되어야 할 것이요 우리의 가장 기쁜 정서(情緖)의 제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모든 축복을 우리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며, 우리는 그의 크신 축복을 느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손에 우리 모든 것을 맡기기를 기뻐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심령은 찬미의 날개를 타므로써 하늘로 더욱 가까이 오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조정에서 노래와 음악으로 경배를 받으시나니 “우리는 우리의 감사를 표시할 때에 하늘 천사의 무리가 경배하는 것과 근사한 경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 조물주 앞에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사 51:3)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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